뇌는 늘 가던 길만 가고 싶어 한다.
고대 인도에서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 있다. “인생의 첫 30년은 사람이 습관을 만들고, 나머지 30년은 습관이 사람을 만든다.” 배가 고프지 않는데도 음식을 먹거나 볼 만한 게 없는데도 계속 텔레비전을 본 적이 있는가?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은 우리가 거기서 전혀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데도 실행하는 것이므로 종종 하강나선을 초래한다.
게다가 언제부터 그런 행동을 시작했는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즐겁지 않고,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배측 선조체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배측 선조체에서 분비된 도파민은 쾌락을 느끼게 해주지 않고 단지 우리를 행동하게 내모는 역할만 한다.
배측 선조체에 새겨지는 패턴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자전거 타는 법을 한번 익히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한 나쁜 습관을 고치기가 몹시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오래된 습관은 제거되지 않는다. 그저 더 강력한 새 습관을 들이면 예전 습관이 약해지는 것뿐이다. 이는 중독이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처음에 중독은 측좌핵의 쾌락적인 충동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측좌핵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중독은 더 이상 쾌락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미 배측 선조체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쾌락이 느껴지든 말든 또 한잔의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고, 한 개비의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도파민의 이런 변화 때문에 중독은 우울증에 걸릴 위험을 높이고 우울증은 중독될 위험을 높인다.
피로는 우울증의 흔한 증세이다. 배측 선조체의 활동 감소가 모두 피로의 원인이다. 새로운 행동을 하려면 전전두피질이 온전히 기능해야 하는데, 전전두피질에 이상이 있으면 주도권이 선조체로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반복해온 일이나 충동에 따른 행동만 하게 된다.
TV시리즈<더 와이어>에서 지미 맥널티 수사관은 알코올중독자에 바람둥이다. 그러나 불규칙하고 불확실하며 스트레스 가득한 살인 담당 부서에서 좀 더 예측이 가능한 거리 순찰 담당으로 옮기자 모든 게 달라진다. 술도 끊고 차분해지고 더 이상 바람도 피우지 않는다.
불안의 A(경보)B(믿음)C(대처)중 세 번째 단계가 대처라는 것을 배웠다. 대처 습관은 빌리의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그는 왜 그렇게 많이 먹었던 것일까? 혼란스러운 가정에서 보낸 어린 시절, 그에게는 먹는 것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기제였다. 무언가를 먹으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고, 즉각적인 쾌락이 주어지며, 신체의 스트레스 반응도 줄어든다.
처음에는 그저 먹겠다는 충동이었으나 이윽고 무의식적인 반복 행동으로 깊이 각인되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몇 초만 자신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빌리는 어느새 주방으로 가거나 맥도널드로 차를 몰거나 도미노 피자에 전화를 거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대처 습관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즈음 빌리는 매우 난처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체중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불러왔고 스트레스는 폭식을 야기했다. 모든 중독이 다 이렇다. 빌리는 매우 기발한 방식으로 이를 해냈다. 음식 중독을 정교한 푸드 아트 조각품 만드는 일로 돌린 것이다. 사과로 장미를 조각하고 멜론으로 백조를 조각했다.
이제 빌리는 먹어야 한다는 충동을 느끼면 덜 파괴적인 일에 주의를 집중한다. 또 나쁜 습관이 촉발한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운동과 글쓰기, 마음챙김 명상 같은 대책을 마련했다. 이런 조치들이 서로 어우려지면서 체중은 약 90킬로그램이 줄었고 지금도 계속 줄고 있다.
스트레스가 촉발하는 습관은 대처 습관만이 아니다. 사실 스트레스는 뇌가 새로운 행동보다는 오래된 습관을 선택하도록 편향시킨다. 결국 요점은 진부하지만 과학적으로 타당한 경구로 정리할 수 있다.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라’는 것이다. 새로운 좋은 습관을 들이려면 뇌가 재배선될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할 수밖에 없다. 배측 선조체에 어떤 암호를 새기는 방법은 그 행동을 반복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엄청난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지만 배측 선조체는 일단 길들고 나면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이가 얼마나 들었든 우리에게는 여전히 뇌를 변화시키고 개선할 힘이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도 바꾼다.
좋은 소식도 있다. 뇌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생활을 바꾸면 뇌도 바뀐다. 우리는 행동과 뇌 화학을 바꿀 수 있고 우울증을 유발하는 뇌 영역과 회로의 배선을 바꿀 수 있다.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듯이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하드웨어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우울증을 잘 이해하는 된 것만으로도 이미 상승나선은 시작된 셈이다. 이해는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면 더 잘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이해는 인정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다.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변화는 어려워진다.~
<‘우울할 땐 뇌 과학’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앨릭스 코브 지음, 정지인님 옮김, 심심출판>
* 앨릭스 코브 :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자 우울증 전문가. 브라운대학교에서 뇌 과학을 전공, UCLA에서 뇌 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울증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으며 현재 UCLA정신의학과에서 연구 활동 중이다.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적 없는 산책 (0) | 2021.03.09 |
---|---|
죽음을 생각해야 삶의 주인이 된다. (0) | 2021.03.09 |
우울할 땐 뇌 과학! (0) | 2021.02.20 |
우리가 변하는 수밖에 없다! (0) | 2021.02.15 |
삶의 짧음에 대하여 (0) | 2021.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