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현재
나는 이 책에서 현대 사회는 지금 인간의 역사에서 거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썼다. 현대 사회가 맞닥뜨린 이 중요한 기로에 대해, 이미 나는 <<철학은 자본주의를 바꿀 수 있는가>>에서 상세히 논한 바 있다. 큰 윤곽은 대략 이러하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분업의 의의에 대해 논하면서 이 점이 유일하게 인민의 희망이 되리라고 예언했는데, 그의 통찰이 옳았다. 자본주의는 도처에서 교환과 분업을 촉진하고, 그럼으로써 사회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확대해 가는데, 바로 이것이 일반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 ‘만인의 자유 해방’에 도달하기 위한 경제적 기초를 조건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종교적인 성스러운 관념이 관습이나 계율에 의해 사람들의 욕망(자기 중심성)을 늘 제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 사회에 있어 자유의 해방은 사람들의 자기 중심적 욕망을 해방하고, 시민 국가는 그 본성에 있어 개개인의 이익을 둘러싼 자의적인 자유 경쟁의 세계가 된다.
실제로 나폴레옹 전쟁이 상징하듯이, 근대 국가가 성립하고 얼마 안 되어 국가 간 투쟁이 개시되는데, 곧 그것은 자원이나 시장을 둘러싼 치열한 자본주의 간의 보편 전쟁으로 급격히 전환된다. 그리고 이 투쟁은 유럽 열강에 의한 식민지 전쟁과 제국주의 전쟁이 되고 마침내 양차 세계 대전이라는 파국에 다다르게 된다.
이후 핵무기의 균형에 의한 냉전 구도라는 배경도 가세하면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드디어 선진국끼리의 전쟁이 거의 불가능해지는 조건이 산출되었다. 인류가 처음으로 보편 전쟁을 억지하는 국제관계 시스템을 창출했다는 점이다.
폭력의 지배냐, 자유의 해방이냐?
1%의 부유층이 세계 부의 80% 이상을 독점하는, 혹은 수십 명의 대부호가 세계 부의 반을 독점하는 상태이다. 근대에 비롯된 자유로운 시민 사회라는 이념의 성패는 자본주의가 격차의 확대를 적절히 제어할 수 잇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격차가 불가역적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은 국가 간 경제 경쟁을 격화시키고 지구의 자원 및 환경의 한계라는 문제도 해결 불가능하게 만든다. 나아가 최빈국 사람들의 절망을 심화시켜, 테러를 포함한 세계적 규모의 폭력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이 문제가 산출하는 결과는 자원의 절대적 최소화, 생존 경쟁의 격화, 그리고 핵병기 기술 확산 등의 요인에 의한 세계적 보편 전쟁 상태의 재현, 또 그 귀결로서 세계적인 절대적 지배 상태로 역행해 버릴 가능성이다. 결국 인류는 다시 한 번 보편 전쟁과 절대 지배 체제로 역행해 갈지도 모른다.
자본주의가 만일 건전한 방식으로 발전한다면, 즉 부의 배분 문제가 적절히 해결되고 시민 사회의 과도한 경쟁의 원리가 적절히 억제되는 방법이 발견된다면, 고도 자본주의에서의 지속적인 테크놀로지의 진보와 그에 따른 생산성의 비약적 확대로 노동 시간을 대폭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상태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전개된다면, 근대에 출발한 자유의 보편적 해방 이념에 하나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할 가능성이 초래 될 것이다. 근대의 자유로운 시민 사회 이념이 인간 사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가기 위해서는 부를 적절하게 배분하는 것, 인구를 적절하게 억제하는 것이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 사회가 어디로 향해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큰 차원에서 사람들이 합의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의 재생을 위하여
우리세계는 자유로운 시민 사회의 원리를 포기하고, 세계는 다시 한번 보편 전쟁과 절대 지배의 상태로 회귀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유럽의 근대는 근대 국가를 창출해 냈지만, 그것은 오래지 않아 격렬한 국가 간 자본주의 전쟁으로 이행하였고 세계에 커다란 비참을 초래하였다.
이미 20세기 전후부터 근대사회 및 근대 국가에 대한 여러 비판들이 출현하고 있었다. 우선 마르크주의는 ‘자유’대신 ‘평등’을 실현할 사회를 구상했지만 ‘자유’를 확보할 원리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절대 지배 사회에 가까워지면서 좌절하고 말았다. 다음으로 등장한 강력한 비판자는 포스트모던 사상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상대주의가 비판의 중심 무기가 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모든 제도들을 죄다 비판하지만 얼터너티브(대안 사회)를 결코 제시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보편적인 원리나 근거에 대한 사유 자체가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가 보편 전쟁을 억지함과 동시에 인간의 자유를 확보하면서 이를 더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시회 원리는 결국 단 하나밖에 없다. 자유로운 시민 사회라는 이념뿐이다.
왜 ‘보편 인식’이 필요한가
철학방법을 ‘이야기’에 의해 세계 설명을 제공하는 종교의 방법과 비교해 보면, 장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보편적인 사고방식’(=공통의 세계 설명)을 창출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철학의 방법에도 한 가지 커다란 약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개념을 논리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심할 경우, ‘흰 것을 검은 것이라고 그럴싸하게 도출해 내는 궤변적 논리술, 즉 상대가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논박할 수 있는 ’귀류론‘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때로는 이것이 보편적 인식에 대한 ’상대주의=회의론‘의 중심적인 무기가 되기도 한다.
상대주의에는 하나의 역설이 있다. ‘상대주의=회의론’은 보편적 사고 따위는 존재할 수 없고 다양한 가치관이야말로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이 주장을 끝까지 추적해 보면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하는 논리에 귀착되고 만다.
모든 사고가 죄다 상대적이라면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 근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니체가 말했듯이 결국 가장 강력한자가 ‘진리’를 참칭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뭐가 선악이고 또 정의, 부정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서는 다양한 가치관이 전적으로 금지되어 버린다.
이렇듯 ‘상대주의=회의론’은 철학적으로 볼 때 본성상 모순이 포함된 주장으로, 헤겔이 말했듯이 ‘모순의 소굴’이 된다. 그것은 언어게임의 테이블에서 ‘보편적인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보편적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
이 책의 주제는 ‘보편 인식의 획득’이다. 최신 유행 철학들의 주제이기도 하다. 상식은 현실에서나 학문에서나 늘 무시 당해왔다. 그 결과 현대에 이르러서는 상식을 회복한다는 게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가 되어버렸다.
가짜뉴스들이 쓰레기처럼 차고 넘치는 것부터가 그렇다. 가짜뉴스로부터 진짜 뉴스를 구별해내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한다. 구별이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다. 상대주의와 회의주의가 지배하는 시대다. 심지어 같은 날 신문에 같은 대상을 정반대로 보도하는 두 기사가 함께 실리기까지 한다.
캉텡 메이야수는 상황을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원흉이 칸트의 철학과 그 이후의 근대 철학 전체라고 지적했다. 칸트에 따르면 물 자체는 인식 불가능하며,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이란 본래부터 불가능하다. 따라서 어떤 수를 쓰더라도 우리는 상대주의에 갇혀 벗어날 수가 없다. 극단적인 신앙주의에 대해서도, 비판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토대가 상실되었다.
특정 정체성을 절대시하는 정체성 정치들이 가장 활발한 정치 세력으로 활약 중이다. 그에 대해 “전문가 말에 귀 기울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보편적인 대안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지는 못하다. 전문가들 간에 의견이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게다가 전문가들의 견해 뒤에 전무가 계급의 밥그릇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상대주의, 회의주의, 신앙주의가 대유행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소위 현대 프랑스 사상(푸코와 들뢰즈, 데리다 등으로 대표되는)이 뿌려놓은 씨앗을 지목한다. 그중에서도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적인 측면이 큰 문제다. 지금은 다시 건전한 상식이 조성되어야 하는 시기로 바뀌었다. 이를 위해 철학은 보편 인식을 확립하고 상대주의와 회의주의를 적절히 다룰 방안들을 연구해야 한다.~옮긴이 박성관님
<‘인간 사회를 사유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 입문’ P319 중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다케다 세이지 지음, 박성관님옮김,>
* 다케다 세이지 : 재일조선인 2세로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현재 와세다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옮긴이 박성관 :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후 돌립연구자로 과학, 철학분야 저술과 강의,번역을 병행하고 있다.
<<다윈에게 직접 듣는 종의 기원 이야기>>, <<아인슈타인과 광속 미스터리>> 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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