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적 국제질서 붕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끝난 후인 1945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질서에 있어서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미국이 세계평화와 국제경제를 수호하기 위해 IMF, 세계경제, GATT를 설립하였다는 사실이다.
동서독을 가르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1989년 냉전이 끝났을 때, 미국은 또 다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수립할 것을 요청하는 노래를 불렀다. 유럽의 이민 위기부터 시작해서, 영국의 브렉시트(EU탈퇴), 2016년 미국 대선의 트럼프 당선과 더불어, 국가들은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거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자유주의적 국제론자들이 투쟁해 왔던 민주적 가치들을 질식하게 하고 있는 포퓰리즘과 독재적인 지도자들의 대거출현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왜 미국은 자신들이 만들었던 시스템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가?
포퓰리즘의 부상
문자 그대로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엘리트주의의 반대말이다. 엘리트주의는 “엘리트는 더 잘 알고 있다.”라는 것을 의미하고, 반면에 포퓰리즘은 일반 대중들의 목소리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대침체’로 알려진 2008~2009년의 세계금융이후 기존의 정치-경제 시스템에 대한 그들의 불만이 표출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자유무역이 경제위기의 영향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오바마 행정부(2009~2017)하의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와 같은 무역협상을 제시하였다. 반면에 태평양이나 대서양 맞은편에 있는 나라들은 상품과 자본,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는 개방 국경정책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유무역이 그들 모두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하였을 때 불만의 기운이 만연하였다. 사실, 개방 국경정책으로 인한 이민자들의 유입은 실업의 원인으로 간주 되었다. 그보다 더, 그들은 세계화의 이득이 단지 엘리트와 대기업들의 주머니로만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한다.
포퓰리스트 정서는 부의 균등한 분배를 요구하는 좌파나 사회주의자들의 정서와는 다르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좌∙우파의 정치적 스펙트럼 측면에서 볼 때 포퓰리즘은 우파로 분류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국적의 차이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외국인보다 내국인들에게 주어야만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국경선을 좀먹는, 세계화를 전복시키기를 추구하는 국수주의 귀환을 상징하기도 한다. 트럼프는 점증하는 포퓰리스트 정서를 등에 업고 선거에 승리하였다. 그는 오바마가 7년간 노력했던 일을 정리하고, 미국의 TTP탈퇴를 선언한 것이었다.
트럼프의 미사여구를 분석해보면, 포퓰리스트 정서의 주요 원인은 연방정부로부터 소외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유무역이 자신들의 공장을 해외에 짓기를 원하는 대기업 편만을 든다고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투자가 없는 상황에서 실업은 해결되지 않는 주요 문제가 된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의 삶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경제는 대기업의 로비스트 편을 들고 있는 이기적인 정치인들 때문에 악화되고 있다.
강자의 부상
포퓰리즘의 부상은 독재적인 지도자, 달리 말하자면 강자의 부상과 동반한다. 2018년에 주류 서방언론에 의해 독재적인 지도자로 분류된 네 명의 저명한 세계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았다. 2013년부터 중국의 시진평, 2012년부터 러시아 푸틴, 2014년부터 터키의 에르도안, 그리고 2010년부터 헝가리 오르반 등이다.
시 주석은 2018년 2월에 개최된 제13차 전인 대회에서 재선되었고, 그와 동시에 헌법은 재임기한을 없애버리도록 수정되었다. 한편 푸틴과 에르도안은 2018년 3월과 5월에 치른 대통령 선거에 승리한 이후 각각 2024년과 2023년까지 권좌에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냉전?
포퓰리즘과 독재주의의 부상은 세계도처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 악화와 관련이 있다. 자유적 관점에서 보면 포퓰리즘과 독재주의는 세계분쟁과 전쟁의 원천이다. 포퓰리즘은 무역전쟁을 가져오고 독재 지도자들은 군비경쟁과 대리전으로 이끌고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크림반도를 합병하는 푸틴의 결정은 히틀러가 1938년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수데텐란트를 합병한 것과 같은 관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진평의 지도하에 있는 중국 역시 자유와 경제의 쇠퇴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자유로운 발언권은 줄어들고 있고, 소수민족들에 대한 탄압은 늘어나고 있다.
이를 보고 언론과 학자들은 새로운 냉전이 진행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중국과 러시아 간의 협정이 미국이 이끄는 자유적인 국제질서에 대항하여 맺어졌다. 이는 똑 같은 행위자와 행위로 이루어진 과거의 긴장상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냉전’이라는 문구의 사용은 이념 간의 전쟁을 함축한다. 미국은 민주와 자유주의의 가치를 상징한다. 반면에 러시아와 중국은 권위주의를 대표한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의 한 가지 중요한 실수는 그들이 현실보다는 아이디어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데에는 세 가지 중요한 핵심 개념을 숙지해야 한다. 이들 핵심개념은 ‘권력정치, 지리학, 그리고 정체성’이다.
권력정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완벽해질 수 있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민주적 시스템, 자유 시장경제, 국제기구와 같은 정당한 메커니즘으로 무장하고 있으면 사람들 간의 폭력은 근절될 수 있고, 사람들의 비관주의는 인류애의 정신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들은 의견을 달리한다. 국가 간의 분쟁이나 전쟁을 영원히 존재할 것으로,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본성 때문으로 보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나 물질적 진보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은 결코 바뀔 수 없다.
기원전 2021년에 살았던 인간들은 탐욕스러웠고, 기원후 2021년 현재에 살고 있는 인간 또한 탐욕스럽다. 인간의 일반적인 본성은 권력에 대한 의지이다. 토마스 홉스는 걸작인 <<리바이던>>(1651년)에서 인간의 본성은 ‘오직 죽음으로써만 끝이 나는 무한한 그리고 쉴 새 없는 권력에 대한 탐욕’을 내재하고 있다고 묘사하였다.
정부 없이는 ‘강자가 약자를 해치고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 빼고는 아무런 법도 없을 것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위협에 대해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 불안전의 느낌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보존을 위한 권력을 추구하게 만든다. 그것은 선 또는 악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성인이라 할지라도 무정부 상태에서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국가는 폭력의 독점자이다 국가만이 범죄자를 처벌하고 방어 작업을 수행할 권한이 있다. 그때서야 문명이 실체화될 수 있다. 국가 간의 관계는 원래 인간의 무정부 상태와 다를 바가 없다. 국가들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세계정부’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국가든 다른 나라를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국가들 간에 불안감을 조성한다.
1960년대에는 소련은 미국보다 강해서 미국은 중국과 동맹을 맺었다. 오늘날 미국은 러시아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러시아가 중국과 동맹하는 관계에 있다. 당연히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
힘의 균형을 이루려는 목적은 안전을 보장하고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국가들은 생존에 관한 외부위협이 없을 때라야 위신과 가치와 같은 다른 목적들을 자유롭게 도모할 수 있다.
지정학
국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어떤 국가가 위협을 가하는 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모든 국가는 지리적 배경이 있다. 인접국가들은 비인접 국가보다 더 위협적이고, 그리고 종종 내륙의 이웃 국가들이 해상의 이웃 국가들보다 더 위협적이다.
지리적 접근성으로 인해 프랑스와 독일은 상대방에 대하여 매우 적대적이 되었고, 결국은 이로 인해 두 개의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정체성 정치학
힘과 지리 문제 이외에도 국가 간의 갈등과 협력은 정체성 문제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정체성은 기본적인 정신적 욕구이다. 만약 개인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개인의 집합체인 국가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은 북한이나 이란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이나 프랑스가 수백 개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다. 힘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문제에 대한 답은 영국이나 프랑스는 적국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들은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구축되고, 파괴되고, 다시 재건되는 어떤 것이다. 때때로 국가들은 더 큰 그룹과 동질감을 가지기도 하고, 때로는 보다 제한된 정체성을 선택하기도 한다. 실질적인 위협이 없을 때는 편협한 민족주의가 선호되기도 한다.
그러나 위협이 존재할 때, 국가는 지역주의와 범민족주의를 선택할 것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와 독일은 냉전 기간 중 공산주의 위협에 대응하고, 유럽적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편협한 민족주의를 내려놓았다.
“문명의 충돌‘저자 헌팅턴은 21세기 세계를 8개 주요한 문명권으로 나누었다. 서방(미국), 동방 정교(러시아), 중화문화(중국), 힌두(인도), 이슬람, 불교,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및 이슬람 국가들은 그들 문화권에 중심 국가가 없어 중심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분쟁을 하고 있다. 헌팅턴은 21세기의 전쟁은 문화권 사이의 단층선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동유럽에서의 불안은 서구문화와 동방 정교 문화 사이의 국경전쟁으로 이해 될 수 있다.
반면에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은 정체성 정책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들은 사람들을 편 가르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들 간의 분쟁의 기본핵심을 형성하는 보편적 가치는 서구문화의 소신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인권, 국가의 종교의 분리 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는 고대 그리스 시기에 경험한 서구문명의 독특한 사건과 종교개혁, 르네상스, 계몽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오늘날 국가들은 갈수록 더 그들의 문화와 근원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는 추세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서부터 유라시아니즘(러시아에서 아시아를 중시하는 정책)에 이르기까지 국가들은 권력과 지정학을 위해 경쟁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앞 다투고 있다.
본 서의 저자는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세 가지 열쇠를 제시하였다. 국제정치에 있어서 각각의 사건들은 권력(힘), 지리학, 정체성이 결합된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들 요소에 기반을 둔 대외정책들은 이상주의에 기반한 사상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다.
“이상주의가 없는 현실주의는 무익하고, 현실주의가 없는 이상주의는 순진하다.”
<국경 없는 세계에 필요한 지정학적 전략 ‘벽이 없는 세계’에서 P299중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아이만 라쉬단 웡 지음, 정상천님 옮김, 산지니 출판>
* 아이만 라쉬단 웡 : 말레시아 국립대 전략 및 방위학과 전공 후 지정학 연구에 몰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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