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루고네스의 시 감상

[중산] 2021. 8. 27. 15:37

그 순간 깨달았다(아!) - 아이들의 신비한 사랑 -

비단처럼 고귀한 행복과 - 뿌리 깊은 혈통을 증오했다. -

쓰디쓴 입맞춤을 - 낙인과도 같은 자줏빛 입술을 내려놓았다.

                                                                                    

☞ 시구에 사용한 글꼴, 줄표로 행갈이를 대신한 것, 산문처럼 보이는 모습까지 참신하다. 랭보와 마테를링크의 영향도 적지 않았지만, 이 같은 산문 형식 역시 아르카이즘(고대 형식을 숭배하려는 회고적인 주의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 밤의 정원이 피어나며

선과 색, 소리 모두 흐려지고

마지막 한 줄기 빛이 그대의 반지에 고뇌를 더한다.

아! 사랑하는 이여, 그대는 죽어 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 <사맹의 시, 엘레지>

                                               * 알베르 사맹(1858~1900),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초라한 깃발처럼.

무(無)의 세계에 빠져 오후도 시들고 있다.

등 돌린 신방의 그늘에,

목걸이에 매달린 마지막 한 점 보석도 빛을 잃고

나의 연밤색 겨우살이 브로치 위에

눈먼 내 가슴을 매달았다.

                                                                                    - <루고네스의 시, 이국적인 색>

 

무자비한 파도는 살모사 같은 식탐으로

향기로운 편지를 물어뜯는다.

반지와 팔찌가 주는 환상의 세계에서

태양은 피를 흘린다.

오후는 유백색 장식 사이로 사그라진다.

                                                      - <우루과이 시인, 홀리오 에레라 이 레이시그의 시, 홀로코스트>

 

*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루고네스의 작품은 에레라와는 다른 모습을 차고 넘칠 정도로 보여 준다. 분명한 것은 루고네스와 에레라 모두 알베르 사맹의 시를 읽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루고네스의 시에 허풍, 황혼, 정원, 한숨, 연못, 향기 등의 단어가 넘쳐 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그는 광범위하게 펼쳐진 위고의 절대적인 신성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너의 순수함도 저물어 가고

몽유병 앓는 달은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시들어 가는 월하향 향기에

나의 철부지 영혼이 밖으로 새어 나온다.

                                                                   - <루고네스의 시, 낭만의 여인>

 

긴 보랏빛 안개

잿빛 강 위로 떠가고

저기 조용한 부두에선

돛을 단 배가

먼 나라를 꿈꾸고 있다.

 

루고네스는 지나치게 엄격함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의 끈질긴 노력은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 볼수 없었으며, 그는 자신이 성취라고 생각한 것이라면 털끝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다.

 

형용사와 동사 모두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을 즐겨 사용했는데, 이 덕분에 루고네스의 시는 바로크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고, 결국 이 같은 바로크적 요소는 루고네스 특유의 패러디를 낳았다. 첫 행에서 이미 서사가 담아내고 있는 감상적인 색조가 잘 드러난다.

 

이제 귀뚜라미는 비비기를 그만두었다.

그저 단단하지도 못한 사포를,

아름다운 정원에선

작은 새들의 은방울 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루고네스의 시, 달에 바치는 찬가>

 

루고네스는 “시는 메타포로 생명을 얻는다.”며 “정확하고 명징하게 표현된 아름다운 이미지를 새롭게 찾을 수 있다면 언어를 풍성하게 할 수 있다.“고 밝힌다. 결과적으로 루고네스는 스페인 문학에서 사용된 모든 메타포를 총망라하여 보여 준다.

 

이 같은 메타포의 사용은 진실로 독창적일 뿐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한다. 다만 지나치게 시각적이어서 표현하려는 바를 방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묘사하는 장면이나 감정보다 언어 구조가 더 두드려 보이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루고네스는 “운은 근대시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텍스트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에서 보기 드문 각운까지도 쉽게 눈에 띈다. 사라오-카카오, 아피오-에스쿨라피오, 나야데-아야 데 등의 각운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시는 절대로 운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요구는 분명 휘트먼, 칼 샌드버그, 아폴리네르 같은 시인들에게 는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이는 <달에 바치는 찬가>를 쓴 루고네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농촌 관련 법의 적절한 개정을 요구하자

이 법의 개정이야말로

농민 권리의 고귀함과

목축과 관련된 정의로움의 기준이 될 것이다.

                                                                       -<가축과 곡물에 부치는 시>

 

독립기념일은 축제의 날이었다.

내가 사는 두메산골은 5월 내내

아침마다 구름이 끼었다.

25일, 이 좋은 날 우리의 어머니는

시골길 산책에 함께 나서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원시림을 따라

가을이 사랑스럽게 익힌

설탕처럼 달콤한 야생 벌집을 찾아다녔다.~

 

<카우초에게>같은 작품의 특정부분에서는 여전히 큰소리로 감정을 발산한다.

 

나는, 산골 사람인 나는, 영혼에는

돌과 같은 굳건한 우정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잘 안다.

 

루고네스는 고집스럽게 농목축업에 관련된 모든 규율을 시로 만들었는데, 그의 두서없는 백과사전식 옹고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도 잇지만, 이는 오히려 단점으로 봐야 한다. 다행히 개인적인 확신이 강해 긴 목록으로 인한 피곤함은 다소 완화된다.

 

루고네스의 시에 아르헨티나적인 주제가 나타난 예인더, 후기에 지속적으로 이에 매달렸다. 그러나 그의 시가 지닌 전체적인 색조는 크리오요의 것이라기보다는 스페인에 더 가까웠으며 사용하는 어휘 역시 지나치게 현학적인 것들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의도적으로 단조로움을 강조한 측면 또한 없지 않다. 이는 시인은 작품에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과 모든 주제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두려운 모습도 없었고 혼란을 느끼지도 않았다.

위험한 아이는 말없이 다가와 꿀 한 방울을 주더니

곧이어 우리를 날카로운 창으로 하늘 높이 못 박았다.

                                                                              -<사랑에 바치는 송가>

 

신화를 언급하면서도 지나치게 포장하려는 태도를 극복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시인 스스로 재창조한 신화로 음미할 수 있게 해 준다. 루고네스는 달에 대한 편애를 보여 준다.

 

그렇지만 또한 특별한 운명으로 인해

축복받은 밤은 너에게 알려 줄 것이다.

달을 발견할 수 있는 달달한 즐거움을

 

<하얀고독>에서도 달에 대한 편애를 보여 준다.

 

달이 하얀 심연을 파고 있다.

적막한, 협곡에서

사람들은 주검이 되고

어둠은 생각처럼 살아 움직인다.

여기 한 사람은 저 순백의 죽음

곁에 있는 것으로 얼어붙고

오랜 세월 만월에 사로잡힌

세계의 아름다움에 얼어붙는다

사랑받는 이의 너무나 슬픈 고뇌는

고통스러운 가슴속에서 떨고 있다.

 

이러한 시에서 우리는 <센티멘탈한 달>이 보여 준 너무 난해한 메타포에서보다 달의 현존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루고네스의 가장 유명한 시로 <첫 비행>,<너무나 청명한 오후>, <비에 젖은 찬미가>등을 꼽을 수 있다. <비에 젖은 찬미가>는 정말 아름답고 감미로운 시행으로 끝을 맺는다.

 

정적

가랑비에 젖은 나무들의 환희

미끄러지듯 쏟아지는 새소리의 환희

검은머리방울새의 지저귀는 투명한 환희

행복한 오후의 너무나 차분한 환희

충만

파란 언덕은 순례자의 향기를 내뿜고

저 깊고 깊은 들녘에선 자고새 울음소리 들려오네.

 

* 레오폴도 루고네스 : 아르헨티나의 시인(1874.6.13 ~ 1938.2.19)·작가·역사가. 시집 《황금빛의 산맥》으로 명성을 얻었다. 행동적 성격과 호기심이 변화무쌍한 시풍을 형성하였다. 저작내용은 철학과 수학에까지 미친다.《뜰의 황혼》, 《감정의 달력》,《백년제가》등의 시집이 있다.<두산백과>

 

<‘세계문학강의’ P887 중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외, 남진희 엄지영님 등 옮김, 민음사 출판>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1899년 아르헨티나 생. 1919년 스페인으로 이주, 부에노스아이래스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침. 1956년 아르헨티나 국민문학상등을 수상.

 

백일홍
산부추꽃
사과,비가 많이 와서 전부 병이 들었다!
알밤, 올밤은 벌써 익어 땅에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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