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 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을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꽃이 하고픈 말
-하인리히 하이네
새벽녘 숲에서 꺽은 제비꽃
이른 아침 그대에게 보내드리리
황혼 무렵 꺾은 장마꽃도
저녁에 그대에게 갖다드리리
그대는 아는가
낮에는 진실하고
밤에는 사랑해달라는
그 예쁜 꽃들이 하고픈 말을
나무
-이성선
나무는 몰랐다
자신이 나무인 줄을
더구나 자기가
하늘의 우주의
아름다운 악기라는 것을
그러나 늦은 가을날
잎이 다 떨어지고
알몸으로 남은 어느 날
그는 보았다
고인 빗물에 비치는
제 모습을
떨고 있는 사람 하나
가지가 모두 현이 되어
온종일 그렇게 조용히
하늘 아래
울고 있는 자신을
그리움
-나태주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매일 시 한잔'에서 발췌, 북로그컴퍼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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