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활짝 핀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상상해보자. 빨리 뛰어가면 꽃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기 어렵다. 반대로 꽃 가까이 걸어가면 꽃을 더 즐길 수 있고, 꽃 앞에 가만히 서 있으면 아름다움을 더 많이 음미할 수 있다.
만약 날아간다면 당신 아래에 있는 지상의 꽃을 보지도 못할 것이다. 빠르게 움직일 때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친다. 마음은 그 어떤 물리적 움직임보다 더 빠르다.
우리가 계속 움직이고, 생각하고, 대상을 인식할 때 우리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놓친다. 명상은 무엇을 하는가? 명상은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고, 굳건히 기다리고 있는 ‘신성한 꽃’이라는 내면의 고요함에 닿아 쉬도록 돕는다.
우리는 내면의 고요함, 영혼의 진동 수준이 마음과 조화를 이루게 하려한다. 일단 이 일이 일어나면 딸깍 스위치가 켜진다. 이것이 깨달음의 순간이다. 이는 가장 내면에 있는 신성한 꽃과 미묘체의 가장 바깥쪽이 하나가 되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공명이다.
왜 수행하는가?
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영성 탐구에 쏟은 나는 영적수행은 모두 그 목적이 의식 확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에서 우리로
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
반발에서 호응으로
분노에서 측은지심으로
노여움에서 사랑으로
오만에서 겸손으로
거정에서 안정으로
두려움에서 용기로
수축에서 팽창으로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불순함에서 순수함으로
갈망에서 만족으로
기대에서 수용으로
지성에서 지혜로
이 모든 변화는 단순한 수행으로 성취할 수 있다.
이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어떤 부분이 불편하거나 긴장하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만성스트레스 상태에서 살고 있다. 이완은 왜 중요한가? 안정적이고 편안한 자세로 애쓰지 않음에 다다르면 명상에 들어갈 준비가 된 것이다.
하트풀니스 이완은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에 뿌리를 둔 것으로 이를 일부 발전시켰다.
- 편안하게 앉아 아주 부드럽게, 천천히 눈을 감는다.
- 발가락을 꼼지락거립니다. 이제 발가락이 이완되었음을 느낍니다.
- 다리 전체를, 허벅지를 이완합니다.
- 이제 엉덩이를 깊이 이완하고 위장, 허리 전체를 이완합니다.
- 등의 긴장을 이완합니다. 기슴을, 어깨를, 팔 위쪽을 모든 근육과 손가락 끝까지 이완합니다.
- 목 근육을 이완합니다. 몸 전체가 이완된 것을 느깁니다.
- 준비가 되었으면 주의를 가슴으로 옮깁니다. 그곳에서 잠시 머뭅니다. 가슴속의 사랑과 빛에 잠겨드는 것을 느낍니다.
- 가만히, 고요히 머물면서 천천히 내면으로 몰입합니다.
- 그만할 때까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까지, 그 상태 그대로 원하는 만큼 머뭅니다. 마치고 싶을 때 빠져 나옵니다.
<‘운명을 디자인하라’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캄레시 파텔 지음, 한국하트폴리스명상협회 옮김, 문진희님 감수, 마이트리 출판> * 캄레시 파텔 : 전 세계 구도자들의 영적안내자로 40여년간 명상을 해왔다. 20세기 초 인도에서 시작된 하트풀리스 수행의 계보를 잇는 네 번째 지도자로, ‘다지‘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56년 인도 북서부에서 태어났으며, 뉴욕에서 30년 가까이 약사로 일했다. 약학대학 재학중이던 1976년에 하트폴리스 수행을 처음 접했고, 이후 명상 수련을 지속하며 영적 의무에 헌신했다. 지은 책으로는 <가슴으로 가는 길>이 있다.
제 몸을 천하같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줄 수 있고, 제 몸을 천하같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맡길 수 있다.(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 도덕경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인간을 꺾기 위해 온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인간을 짓이긴다 해도 인간은 자신을 죽이는 우주보다 더 고귀하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존엄은 사유로 이뤄져 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과 시간에서가 아니라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라. 이것이 도덕의 원리다.“
인간은 한낱 갈대와 같이 미약한 존재지만 생각할 수 있기에 존엄성을 지킨다. 생각을 통해 미약함을 알게 되고, 올바른 도덕성을 지켜 나간다. 이 말은 하늘과 땅, 사람을 묶어 ‘삼재三才’라고 했던 동양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신독,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조윤제지음, 비즈니스북스출판>
* 대한민국 고전연구가,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삼성 마케팅실, 삼성 영상사업단에서 근무했다. 신독(愼獨)은 ‘홀로 있을 때 더욱 섬긴다’는 뜻으로 <대학>과 <중용>에서 처음 언급되었으며,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도록 혼자 있는 곳에서조차도 행동을 삼가고 절제해야 함을 강조했다. 다산, 퇴계, 백범, 도산도 ‘신독’을 평생의 신조로 삼아 살아갔다. <하루 한 장 고정수업>, <다산의 마지막 공부>, <천년의 내공>,<말공부>, <논어 천재가 된 홍팀장>등의 저서가 있다.
우리는 나르시시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SNS는 시대의 징후이며 휴대폰은 시대의 페티시입니다.
나르시시즘 - 휴대폰 - SNS는 뫼비우스의 띠를 이룹니다.
-정지돈 소설가의 <어느 서평가의 최후>에서.
자신의 모든 면을 사랑하자
자기애Self-Love는 내가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깨닫고 타고난 소질과 한계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보살피는 것이다.
특별한 롤 모델이 없었던 사람이라도 어린 시절의 결핍을 스스로 채우고, 더 나은 롤 모델과 스승을 찾으며 생활신조로 삼을 새로운 좌우명도 정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 어쩌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내담자 론다는 피부경화증 때문에 나를 찾아왔는데, 이 질병은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지만 완치는 불가능한, 고통스럽고 외모까지 망가뜨리는 자가면역질환이다.
그녀도 자포자기한 태도였다. 론다는 부모가 자살하자 애초에 자기가 잘못된 아이였다고 믿게 되었다. 론다가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동안 부모가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의 기운이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가기’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계속 탓하면서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건강이 나아질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론다는 상담 치료를 받기로 했고 그것은 그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인생을 재구성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자 그동안 겪어야 했던 상황들이 더는 그녀를 괴롭히지 않고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나중에 론다는 내게 편지를 보냈다. “키워준 부모도, 내가 겪은 일도 뜻대로 할 수 없었지만 내 마음의 감옥에 사랑을 보냈더니 가슴속에 남아 있던 상처를, 그러니까 사랑받지 못했던 모든 경험이 다른 의미로 바뀌었어요.”
론다는 이제 진정으로 자신의 리듬과 균형을 찾았고 신의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더는 과거나 현재의 고통과 맞서 싸우지 않고 자기 인생을 선물로 받아들였다.
지난날의 부정적인 메시지가 계속 생각을 제어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라. 부정적 메시지는 독과 같아서 타인에게까지 부정적인 감정을 투영하게 만든다. 그래서 감정이 상했을 때 남을 탓하기 쉽다.
자기애는 타인의 의견이나 취향, 그들의 필요나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며 신이 내게 준 삶의 목적을 완수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른인 동시에 아직 내면에 살고 있는 어린 자아의 대변인이다. 내 안의 어린 아이가 뭐라고 하는지 귀 기울여보라. 그는 나만의 피터팬, 웬디, 팅커 벨이 모두 하나로 합쳐진 존재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사기와 의욕을 북돋워주며 삶에 영감을 주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보내자.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자기를 보살피지 못하는 삶에 갇혀 지낸다.
이들은 슬프고 공허한 상태로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며,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사정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짐작조차 못한다.
혹시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우울한 감정 때문에 자책하느라 세월을 허비하지 말고 부정적 감정을 경고성 신호로 이용하여 위험에서 벗어나라.
나의 일부가 되어준 부정적 감정을 고맙게 여겨라. 우울증은 갇혔다는 기분이 들거나 삶의 의욕을 빼앗기는 상황에서 나를 보호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암울한 순간을 창의력의 원천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다. 우울증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려고 하지 마라. 오히려 반대로 접근해보라.
“그래, 지금 내 기분은 그래. 그렇다면 이 감정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여기 숨어 있는 선물과 경고 메시지를 발견하면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겠지?”
앞으로는 행복한 우울증, 창의적인 질병, 눈부신 실패, 건설적인 실패자라고 비하하지 마라. 실패의 경험은 언제나 경계할 만한 본보기로 쓸모가 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잠시 거울을 들여다보고 부정적인 생각을 끊어내자. 자기 눈을 들여다보고 자기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어라. “000 난 너를 사랑해,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게.”
<‘비긴 어게인’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버니S. 시겔 박사 / 신시아J. 헌 지음, 강이수님 옮김, 위즈덤하우스 출판>
* 버니S. 시겔 박사 :192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출생. 코넬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으며, 예일대학 뉴헤이븐 병원에서 외과 전공의 과정을 마침. 1989년 일반외과와 소아외과 현직에서 은퇴하여 환자지원 단체를 운영 중에 있음.
** 신시아J. 헌 : 프리렌서 작가겸 편집자. 심리학 및 상담과 문예창작을 전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