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제 생산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직접적 영향
기계 사용의 첫 번째 결과는 여성노동과 아동노동이었다. 기계는 노동자 가족의 전체 구성원들을 노동시장에 내던짐으로써 가장(家長)의 노동력의 가치를 그의 전체 가족구성원들에게로 분할하여 가장의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킨다. 두 번째로 기계는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지만, 그것은 자본의 수중에서는 기계에 의해 처음 정복된 공업부문들에서 모든 자연적 제한을 넘어 노동일(勞動日)을 연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된다. 세 번째로 기계의 사용이 보급되고 기계사용에 익숙해진 특수한 노동자계급의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노동의 속도에 따라서 노동의 강도가 자연발생적으로 증대한다.
◆ 노동자와 기계 사이의 투쟁
노동자가 기계와 [자본에 의한] 기계의 사용을 구별하고, 따라서 물질적 생산수단 그 자체를 공격하는 것으로부터 그것을 이용하는 사회형태를 공격하는 것으로 옮길 줄 알게 되기까지에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노동수단은 기계의 형태를 취하자마자 곧 노동자 자신의 경쟁자로 된다. 기계에 의한 자본의 가치증식은 노동자의 수에 정비례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전체는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한다는데 입각하고 있다. 분업은 이 노동력을 특정의 도구를 취급하는 완전히 특수화된 기능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일면적인 것으로 만든다.
<“자본론(Capital : A Critical Analysis of Capitalist Production)”에서 일부 요약 발췌, 칼 마르크스 지음 >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자본주의가 영구불멸하다든가 가장 좋은 체제라는 부르주아적 지식인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 대중이 자본주의체제 아래에서 고통과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를 개선하거나 변혁할 수 있는 지름길을 찾을 수 있도록 『자본론』을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다. - 칼 마르크스 지음 -
▣ 더 깊이 있게 알기 위하여
마르크스의 경제학 체계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를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신념은 유물론,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계급이론과 계급투쟁에 관한 연구를 통해 확립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본주의 경제를 완전히 분석하기 위해 자본(capital), 토지재산(landed property), 임금노동(wage-labour), 국가(the state), 대외거래(foreign transactions), 세계경제(the world economy)라는 여섯 권의 책을 계획했던 것 같으나 이 여섯 권의 책을 모두 쓸 시간을 갖지 못해, 자본ㆍ토지재산ㆍ임금노동에 관한 연구를 현존의 『자본론』 세 권에 남겼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인류 역사상 하나의 ‘특수한 단계’라고 파악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특수성 또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첫째, 생산의 목적이 이윤(profit)의 획득에 있기 때문에 인간들의 욕구(needs, wants) 충족은 무시될 수 있다. 둘째, 사회의 신진대사가 ‘상품의 교환’을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사회 전체가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사로잡힌다. 따라서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당연히 몰락한다고 보았는데, 그 주된 이유는 자본가적 사적 소유가 경제위기나 공황을 심화ㆍ확대하면서 사회의 물적ㆍ인적 자원을 점점 더 낭비하게 된다는 점과, 이 과정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이 심화ㆍ확대된다는 점이다. 특히 생산력이 모든 주민들을 잘 살게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의 거대 자본가들이 모든 이익을 독점함으로써 대부분의 주민들을 억압과 궁핍으로 내모는 것에 대한 반항이 자본주의 사회를 타도하는 큰 동력이 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몰락 이후의 사회를 인간의 착취가 없는 사회, 또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the association of free producers), 또는 공산주의(communism)라고 부른다. 프롤레타리아 독재(dictatorship of proletariat)는 자본가계급에 의한 정치적ㆍ경제적ㆍ사상적 지배를 타도하기 위한 과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어떤 폭력적인 정치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사회 전체에 걸쳐 ‘헤게모니’를 잡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를 부르주아지 독재(dictatorship of bourgeoisie)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기본과제는 자본주의의 특수성과 한계를 해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저자 칼 마르크스(1818~1883)
독일의 라인주(州) 트리어 출생의 공산주의자ㆍ혁명가ㆍ경제학자. 유대인 그리스도교 가정의 7남매 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로 자유사상을 지닌 계몽주의파 인물이었고, 어머니는 네덜란드의 귀족 출신이었다. 자유롭고 교양 있는 가정에서 성장하여 1830~1835년 트리어김나지움(고등학교)에서 공부한 다음, 1835년 본대학에 입학하여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ㆍ미술사 등 인문계 수업을 받았다. 1년 후 본을 떠나 1836년 베를린대학교에 입학하여 법률ㆍ역사ㆍ철학을 공부하였다.
마르크스는 1842년 1월 새로 창간된 급진적 반정부신문인 『라인 신문』에 기고를 시작하여 그해 10월에 신문편집장이 되었으나, 여러 현실문제를 취급하는 과정에서 경제학 연구의 필요성을 느꼈다. 1844년 『경제학ㆍ철학 초고(草稿)』와 『헤겔 법철학 비판서설(法哲學批判序說)』을, 1845년 엥겔스와 공동으로 『신성가족』과 『독일 이데올로기』를 썼으며,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유물사관의 주장을 처음으로 정립ㆍ설명하였다. 1847년 P. J. 프루동(1809~1865)의 『빈곤의 철학』을 비판한 『철학의 빈곤』을 쓰고, 그해에 런던에서 공산주의자동맹이 결성되자 엥겔스와 함께 이에 가입하여 동맹의 강령인 『공산당선언』을 공동명의로 집필하였는데 이 선언은 그해 2월에 발표되었다.
1859년 경제학 이론에 대한 최초의 저서 『경제학비판』이 간행되었는데, 이 책의 서언(序言)에 유명한 유물사관 공식이 실려 있다. 1864년에 1862년부터 구상 중이던 『자본론』 제1권을 저술했고 1867년 함부르크에서 출판하였다. 그러나 제2권과 제3권은 마르크스의 사후에 엥겔스가 1885년과 1894년에 각각 출판하였고, 처음에 제4권으로 구상되었던 부분은 K.카우츠키에 의하여 1905~1910년에 『잉여가치학설사(剩餘價値學說史)』라는 이름의 독립된 형태로 출판되었다. 1881년 3월 14일 런던 자택에서 평생의 친구이자 협력자인 엥겔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64세로 일생을 마쳤다.
<쪽동백나무, 때죽나무과의 낙엽교목, 목재는 가구재,조각 재료로 쓰이고, 종자에서 기름을 짠다. 한방에서 열매를 옥령화(玉鈴花)라는 약재로 쓰는데, 요충을 제거하고 종기의 염증을 가라앉힌다. >